첫날, 혼자왔다는 부담감에 행동 하나하나가 뻣뻣했다. 같이 혼자 온 새로누나가 먼저 말을 걸고 밥을 같이 먹기전까지는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던지... 드디어 일행과 말을 트게 되는구나! 1주일 내내 그리 비참하게(?) 지내진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에 마음을 푹 놓았다. 잘 지내야 할 텐데... 아이들도 빨리 만나보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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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아이들을 만났다. 그런데 내가 너무 소극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말도 못나눠봤다. 처음엔 내가 교직이 적성이 아닌건가? 라고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다. 그런데 나중에 가서는 아이들이 먼저 다가와줘서 잘 지내게 되었다. 아! 드디어 아이들과 소통을 하게 되는구나. 오기전엔 기대반 두려움반이었다. 아이들과 제대로 소통해본적이 없어서 너무 두려웠다. 결국 끝까지 6학년 여자아이들과는 많이 친해지질 못했다.

지리산 평화 공부방 문패. 아이들과 함께 만들었다. 만들기 프로그램 진행에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으흑). 그치만 우리 힘으로 이렇게 만들어내서 정말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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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 상영이


공부가 끝나고 비행기 접어 날리는 놀이를 계속하다가, 상영이가 나를 끌고 밖에 나왔다. 얼떨결에 흙놀이를 같이 하게 되었다. 이 녀석, 같이 놀아줄 선생님을 오랫동안 기다리고있었구나... 여태껏 못 논 것까지 선생님이 실컷 놀아줄게! 신나게 해가 중천에 오를 때 까지 피부가 그을리도록 놀아줬다. (이때 다 탔다 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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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먼저 와줘서 정말 고마웠다. ㅎㅎ

어떻게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렇게 밝은 모습을 잃지 않을 수 있는지, 힘든 것을 내색하지 않는 아이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또 너무 고맙기도 했다. 밝게 자라줘서,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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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 만들기! 공부방 6학년 이쁜이들과 팜스테이 교환학생 ゆみ


그림도 잘그리고, 피아노도 잘 치고, 예쁜데다 손재주도 남다른 빈남이.
목소리도 곱고 마음도 고운, 그치만 힘이 셌던(헐) 소희.
예쁜 얼굴만큼 말도 예쁘게 써 줬으면 더 좋을 것 같은 우린이. 켄다마를 잘했다!
말이 잘 안통해서 '츠카레타! 츠카레타!'를 계속해서 외쳤던 ゆみちゃん. 미안허다~

말썽꾸러기 혜빈이덕분에 조금 약이 올라있었는데 빈남이가 피아노의자에 앉아 허접하게 건반을 누르고 있는 내 손을 갑자기 들어올리더니(?) 피아노는 이렇게 치는거라며 내 손을 건반위로 계속해서 내리꽂았다. 피아노를 급하게 몰아치면서 가르쳐줬었다. 무서운 피아노선생같으니라구! 당황한 나는 손을 덜덜덜 떨면서 계속해서 배워나갔다. 마침내 세 곡을 배우는 데 성공하고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쳤다. 기분이 완전 풀렸다. ^0^
아이들의 생기발랄함, 최고의 명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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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상황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보고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밥을 굶어 삐쩍마르고, 여름엔 할아버지, 할머니를 대신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농사일을 하루종일 해야하며, 겨울엔 전기세를 내기 힘들어 전기장판조차 켤 수 없는 아이들이 아직도 이 곳에 있었다. 옛날에는 절대 빈곤만이 있었다면, 지금은 상대빈곤까지 겹쳐 아이들을 두번 죽이고 있다.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단지 이 사실 하나만으로 설명이 된다. 좀 더 따뜻하게 감싸주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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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선생님이라는, 부족한 나에게 그런 부끄러운 이름을 계속해서 불러줬던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한다. 1주일동안 나는 아이들에게 준 것보다 받은게 훨씬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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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딱 공부방 애들만큼이나 귀여워요!! ㅋㅋㅋㅋㅋㅋㅋ

3주 내내 수고 많~으셨던 회장님(과 산하님, 연이!) 모두모두 감사드립니다. ^^
2009/07/28 23:20 2009/07/28 23:20
화이토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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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민군:) 2009/08/11 14:52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엇 동우다 ㅋ 고생많은 곽회장...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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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

2009/07/16 22:02 / 0. 분류없음

집에 콕 박혀있는게 너무 답답해서 비가 계속해서 내리는데도 새벽 산책을 갔다왔다. 사고 자체가 마비되어버리는 잉여생활이 너무 답답해서 아무 일이나 저질러보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짓이었다. 바깥공기가 생각보다 차서 적당한 옷으로 갈아입고 문밖을 나섰다. 가는도중에 내가 왜 이런짓을 하고있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그냥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원래 나오기전에는 걸으면서 이것저것 아무 주제로나 깊이 사색을 하고 싶었으나 별로 그러진 못했고, 밖 풍경이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들어와 생각을 막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난 매일 버스나 지하철로 지나다니는 길인데도, 창밖을 바라보며 그것을 감상하면 했지 그 바깥 풍경을 잊고 머릿속의 어떤 생각을 질질 끌어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오늘도 그랬다. 그치만 매일 버스로 지나다니는 길을 걸으니 좀 더 디테일한 부분에 시선이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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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후된, 그래서 뉴타운으로 지정된 서동고갯길을 지나가며 잡다한 생각의 끈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다니기 불편한 언덕을 깎고깎아 집을 지어 오밀조밀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의 애환이 가득 담긴 곳, 술집, 위생적으로 보이지 않는 음식점들, 먼지쌓인 구멍가게들, 간선도로만큼 버스가 지나다니는데도 길 곳곳에 주차가 되어 차가 지나가기가 매우 힘든...  그런데 이곳의 풍경이 곧 사라지게 될 것이라니 기분이 이상했다. 사실 이 곳은 그냥 지나치는 길 정도의 의미를 갖는 곳이 아니다. 난 이곳에서 태어났었고, 지금은 이 길에서 살고있지 않지만 어릴적의 추억이 곳곳에 묻어있는 동네다. 그런데 뉴타운 지정에 대한 설명회를 동사무소에서 열겠다는 플래카드가 길 위로 걸려있다니... 기분이 좀 이상해져버렸다.

고개를 거의 내려올 때 쯤 어떤 간판이 보였다. '돼지고기보다 싼 미국산 소고기', 아- 그랬다. 1년전만해도 미국산 소고기때문에 참 말도많고 시끄러웠지. 국가는 이들의 입을 닫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들을 저질러왔었는가. 이제 사람들은 그 때 있었던 일을 다 잊어버리고 그저 내가 죽기야 하겠니 하며 살고 있겠지. 하지만 여전히 이 고기의 위험성은 달라진것은 없다. 내가 그렇게도 슬펐던 이유는 이러한 위험의 피해는 바로 이 곳, 가난하고 소박한 이 동네에서 가장 먼저 발생하게 될 거라는 자명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걸어가니, 부대앞역이 나왔다. 부대앞역 바로 앞의 푸르지오 주상복합아파트. 이 곳에 살면 정말 편하겠지. 정말 솔직히 말해서 난 이런 도시적인, 스스로의 목을 졸라매는 삶에 대한 미련을 아직도 벗지 못한 것 같다.

부산대 정문앞에 도착했다. 새벽 2시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이 곳은 내가 지나왔던 다른 길과는 달리 매우 밝고, 사람들도 꽤나 많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이시간에 이런차림으로 돌아다녀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으려나? 이제와서 말하건대 난 거의 잠옷차림이었다. 하지만 길을 지나다니는, 상점 안에 있는 젊은이들은 다들 자기일에만 몰두하는 모양이어서, 대학교 안에 들어온 쇼핑센터인 효원 굿플러스의 청소부 아저씨 아주머니 두분만이 날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AM 2:37

부산대학교 인문관 앞


효원 굿플러스를 지나 좀 더 올라와서, 인문관에 도착했다. 이 곳에서 잠깐 쉬어가기로 하고 왜 가져왔는지 모를 카메라를 갖고 놀기 시작했다. 이러려고 가져왔나보다...

부산대 장전캠퍼스는 아는사람은 알겠지만 산을 깎아 만든 캠퍼스다. 오르내리는데 꽤 고생했지만 미리내계곡(맞나?)를 지나면서 약간의 상쾌함을 느꼈으니 뭐 그리 기분나쁜일만은 아니었다. 제2사범관(거의 꼭대기)까지 올라오니 숨이 좀 차는게 느껴져서 반대편 기숙사까지는 좀 쉬엄쉬엄 걸어갔다. 그 동안은 사람은 코빼기도 안 보였고, 단지 쓰레기통을 뒤지는 고양이들만이 날 경계하는 눈빛으로 쏘아보기만 했다. 웅비관, BTL로 만들어진 부산대학교 기숙사. 국립대학교라는 이곳도 이젠 기업의 터치를 많이 받는다. 잘은 모르지만 나중엔 감당못할 일들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그렇고 부산대학교학생들도 그럴것이고 당장 시설이 편리하고 쾌적하므로 이런 걱정은 이미 뇌리에서 사라진지 오래일 것이다.

이제 부산대학교를 내려와서,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강변을 걷고싶었으므로 이젠 왔던길과는 다르게 온천천을 따라 온천장역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새벽 4시가 거의 다 된 시간인데도, 중앙로에선 차가 빗길을 달리며 내는 우악스러운 소리를 계속해서 질러댔다. 돌아가는길은 사람이 많이 줄어들어 조금 무섭다는 느낌도 들었다. 비는 계속해서 오고... 다시 서동고갯길을 넘어 집으로 들어가는길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새벽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목욕하다 귀에 찬 물 처럼 성가시는 답답함을 털어낸 것 같아 기분좋게 잠들 수 있었다.
2009/07/16 22:02 2009/07/16 22:02
화이토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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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보리 2009/07/17 01:20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당장 시설이 편리하고 쾌적하므로 이런 걱정은 이미 뇌리에서 사라진지 오래일 것이다------> me? 서서히 관리비를 올려 내 목을 조여 올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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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교육계에 종사하게 될 사람으로써 이 글은 생각해 볼 만한 것들을 남김없이 담아놓은 글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지 경제논리, 경쟁이데올로기가 사회 전체에 만연해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경쟁만이 인간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도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교육의 수단이 되는 평가'가 아닌 '평가를 위해 교육'을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시험은 교육이 잘 일어났는지 알아 본 후 사후처리를 하는 수단 아닌, 그 자체가 선발통과를 위한 최종 목표로 전도되어 상황을 이 지경까지 몰고 간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빡센(?) 시스템 자체가 학생으로 하여금 '공부'를 하게 하여 긍정적인 효과를 내지 않느냐,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있겠느냐? 하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선다형 지필평가와 같은 경우는 학습이 제대로 일어났는가를 알 수 있는 지표로서 기능하기가 매우 힘든 것 같다. 제일 쉽게 들 수 있는 근거로 '나'만 하더라도 수능에서 꽤 고득점이었으나 현실은 이렇다. 사물을 바라보는 주관적, 객관적인 안목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여 사고하는 것이 어려워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조차 횡설수설인 것이다. 조금만 더 넓게 바라본다면, 평가가 선발통과시험과 같은 고부담 시험이 아닐지라도 학습은 얼마든지 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핀란드의 절대평가 시스템과 같은 것은 다들 익히 들어 알고 있지 않은가? 아. 글을 쓰다보니 뭔가 어진이 형 글에서 계속해서 멀어져가고 있어....
2009/06/28 14:23 2009/06/28 14:23
화이토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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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엽토군 2009/06/28 21:32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인젠 내글 좀 그만 을궈먹어라 임마;;;
    그리고 너는 시문학을 좀 배워보면 어떠니. 하고싶은 말을 압축하는 법을 배우게될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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